산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는 거다. 일상생활의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주고 내 몸에 쉼을 주기 위해 하는 것이다. 신선한 공기와 푸르른 자연환경은 신선함과 자극을 준다. 그럼 책에서의 산책이란 뭘까? 무거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꼭 알아내겠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것을 산책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몸으로 하는 산책처럼 부담가지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책읽기. 머리로 무언가를 꼭 얻어야 되겠다는 마음보다는 가슴으로 여유 있게 느끼며 생각하는 책읽기. 그것이 책 읽기에서 산책이라고 생각한다. ‘한시미학산책’ 이란 책도 그런 의미로 접근하고 싶었다. 결코 친하지 않는 한자와의 만남이 부담이 되지만 작가의 친절한 설명은 그런 장애물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도록 길 안내를 잘 해준다. 결코 혼자서는 다가설 수 없을 것 같은 영역을 산책이라는 덜 부담되는 방식을 통해 안내해 준다. 그림은 세상에 보이는 현상을 작가의 눈으로 표현한다. 사실성을 강조한 기법이 유행한 경우도 있지만 사실성에 작가의 표현법이 들어가 추상성이 극대한 되는 기법도 유행한다. 그러기에 단순히 ‘잘 그렸네, 못 그렸네’ 라고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시’도 세상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법이다. 단지 형상화에서 문자화로 수단의 이동이 있을 뿐이다. 사실성을 강조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도 있지만 함축성을 강조해 한 단어 한 단어에 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시, 그림 등을 포함한 문학과 예술은 읽는 독자,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의 배경에는 다른 성장배경, 지식수준 등이 연결되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생각하도록 훈련받아 온 나로서는 ‘한시’라는 종목을 접함에 있어서 자연스레 정답을 찾으려는 습성이 나타났다. ‘왜 비 오는 모습을, 그리고 왜 나무가 우거져 있는 모습’ 등을 묘사하는 시를 썼는가?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것처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려고만 했다. 그 시를 지을 당시 작가의 모습, 심정 그리고 나를 그 사람과 동일시해 느낄 감정과 나만의 경험에서 불러올 이미지 등을 놓쳤다. 이런 놓친 부분을 시 안내자인 저자는 짤막한 설명으로 다시 방향을 잡아준다. 시와는 담 쌓고 지낸 나. 그 와중에 처음 접한 한시. 책의 제목처럼 산책하듯 반복해 천천히 읽어내려 가다보면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도 평탄하고 매끈한 길을 걷는 것처럼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시학의 근원을 탐색하는 스물네 가지 한시 이야기
한시에 대한 기초 입문서이며 동시에 높은 안목을 보여주는 비평서이고, 창작의 원리와 현묘함을 다룬 창작론이며 전통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문화론이기도 한 책이다. 한시의 짙은 시향과 아름다움, 옛글의 정취, 그리고 지금 여기 와의 소통을 향한 여정을 담은 이 책은 초판 발행 이후 15년이 넘도록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고전 읽기 의 장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동아시아의 한시 이론을 빌려 중국과 한국 한시를 주제, 형식, 작법에 따라 스물네 개의 테마로 분석하고 해석했다. 중국의 두보와 이백을 물론이고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정지상, 이규보, 조선의 이덕무, 이옥, 현대의 박목월과 조지훈 등 대시인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한시의 미학을 논하기도 하면서 시에 얽힌 시인들의 사연, 문자 유희에 가까운 시들, 그리고 조선후기 한시의 변천과정에서 보여주는 파격과 해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은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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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_ 허공 속으로 난 길 ― 한시의 언어 미학
두 번째 이야기_ 그림과 시 ― 사의전신론(寫意傳神論)
세 번째 이야기_ 언어의 감옥 ― 입상진의론(立象盡意論)
네 번째 이야기_ 보여주는 시, 말하는 시 ― 당시와 송시
다섯 번째 이야기_ 버들을 꺾는 뜻은 ― 한시의 정운미(情韻味)
여섯 번째 이야기_ 즐거운 오독 ― 모호성에 대하여
일곱 번째 이야기_ 사물과 자아의 접속 ― 정경론(情景論)
여덟 번째 이야기_ 일자사(一字師) 이야기_ ― 시안론(詩眼論)
아홉 번째 이야기_ 작시, 즐거운 괴로움 ― 고음론(苦吟論)
열 번째 이야기_ 미워할 수 없는 손님 ― 시마론(詩魔論)
열한 번째 이야기_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詩窮而後工論)
열두 번째 이야기_ 시는 그 사람이다 ― 기상론(氣象論)
열세 번째 이야기_ 씨가 되는 말 ― 시참론(詩讖論)
열네 번째 이야기_ 놀이하는 인간 ― 잡체시의 세계 1
열다섯 번째 이야기_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 잡체시의 세계 2
열여섯 번째 이야기_ 말장난의 행간 ― 한시의 쌍관의(雙關義)
열일곱 번째 이야기_ 해체의 시학 ― 파격시의 세계
열여덟 번째 이야기_ 바라봄의 시학 ― 관물론(觀物論)
열아홉 번째 이야기_ 깨달음의 바다 ― 선시(禪詩)
스무 번째 이야기_ 산과 물의 깊은 뜻 ― 산수시(山水詩)
스물한 번째 이야기_ 실낙원의 비가(悲歌) ― 유선시(遊仙詩)
스물두 번째 이야기_ 시와 역사 ― 시사(詩史)와 사시(史詩)
스물세 번째 이야기_ 사랑이 어떻더냐 ― 정시(情詩)
스물네 번째 이야기_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 상동구이론(尙同求異論)
에필로그 _ 그때의 지금인 옛날 ― 통변론(通變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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